<TYPE MOON 단편> 2015년의 시계탑 -2- by 더스크

02 레흐 우발의 기록

――― 마술사의 일생이란, 과거에 봉사하는 것이다.
정오를 조금 지난 연구실.
산 같은 계측 기구와 산 같은 기록용지 속에서, 레흐 우발은 오늘도 변함없이 1초도 쉬지 않고, 과거의 기록을 해석하고 있었다.
레흐는 이 저택에 재적되어있는 연구자다.
남성. 독일 국적. 아리아계. 훌쩍 큰 키를 고양이처럼 굽혀, 어지러진 실내를 사뭇 좁다는 듯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지금와선 연구벌레, 연구동에서 한걸음도 나오지 않는 체어맨이라 야유당하는 그지만, 과거 20살에 마술사계제의 제위(페스)에 
도달했던 신동으로서 각광을 받던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위를 얻고 난 이후 20년, 레흐는 스스로 11과(로크스로트)에 틀어박혀, 이후 조용히 자신의 책무를 다해왔다.
『관장, 오늘 아침도 구획장에게서 권유가. 상담할 일이 있으니 부디 얼굴을 비춰주셨으면 한다, 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연구실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낭랑히 여성의 목소리가 울린다.
목소리는 레흐의 비서 겸 시중의 것이다. 레흐는 신경질적으로 얼굴을 치켜들고, 성실하게도 스피커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어쩌고고 뭐고 노 타임이라고 노릿지 군! 밖에서 오는 용건은 전부다 거절해줘. 나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아. 사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은 그 달 마지막 날, 저녁부터 잠들기 전까지 4시간 뿐이라고 몇번을 말해야 알아 듣는건가!?」
『하아. 그렇지만, 이번엔 학원장도 오신다고 하는, 굉장히 명예로운』
「알게 뭐야, 네 맛없는 파이라도 들려서 돌려보내! 애초에 학원장 따위 입학식에도 얼굴을 안비추는 도시전설 아니냐! 난 말이야, 극에 달한 방임주의가 맘에 들어서 시계탑에 온거라고! 근데 매년 매년 아무래도 좋을 인간 관계만 늘어난다니, 그거야말로 말이 다르잖아!」
『동감합니다만, 인생이란 그런 법이므로 슬슬 이해해 주시길』
「그건 제대로 된 인간의 얘기겠지! 세상에서 따돌려지고 있는 내가, 왜 그런 세상과 어울려야 하냐고! 됐으니까 거절해줘. 그리고 가급적 나한테 간섭하지마! 적어도 오늘 하루, 앞으로 10시간 정도는 절대로!」
『알겠습니다. 구획장에겐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끊겼다.
레흐는 한숨을 쉬며 마도서의 내용을 해독한다. 신경질적이게도, 방금 전 대화 중에도 그 눈은 멈춰있지 않았다.
「아아, 마술사의 일생은 짧아. 왜 나는 뇌만 남아서 살아갈 수 없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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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다 보니 40대 치고는 말투가 너무 노인네 같아서 한번에 수정하다 보니까
뭔가 좀 이상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는데 애교로...

이렇듯이, 레흐는 철저하게 연구마술사다.

자신의 이론, 자신의 마술식만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 이의외 책무……마술을 실천해, 집안과 핏줄을 쌓아, 지배계급으로서 세력을 늘려가는 마술사를 괜히 싫어하고 있다.
레흐가 보기에 그들은 "평범한 인간"과 큰 차이 없는 속물이다.
신비를 풀어낸다고 한다면, 그곳에 인간성을 바래선 안된다.
마술사란 마술만을 생각하는 생물이며, 거기에 "인생"이란 짐을 짊어질 여유는 없는 것이다.
예를들어, 지금 그가 해독하고 있는 마술서.
마술사에게 있어 과거의 마술서의 해독이란 단순히 읽어 내는 것이 아니다. 그 연대에서만 통했던 신비가 이 시대에서도 재현할 수 있도록 의미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과거에만 성립했던 유행을, 현대에도 통하는 유행으로 리라이트하는 것이다.
이 책의 한 페이지를 해독하는데 1시간을 쓴다고 하자. 500페이지에 달하는 책에 쏟는 시간은 약 20일이다. 연수동에 있는, 아직 해독되지 않은 서적은 앞으로 500권. 평균적으로 생각해보면 1년에 12권. 50권을 해독하면 4년에서 5년이란 시간이 지나있다.
아니, 그것만이라면 그나마 낫다. 1권만 해독할 뿐이라면 이야기는 좀 더 간단하다.
하지만 레흐 우발의 책무는 "어떤 마술서의 해독"이 아니라, "어떤 대계의 해독"이었다.
일은 전부 연속되며, 유기적으로 이어진 현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마술서 A와 마술서 B 안에서, 어떤 사항에 있어서 다른 견해가 보인다고 하면 다시금 A의 내용을 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
해독하는 책이 많으면 많을수록 재정의에 걸리는 시간은 늘어간다. 그야 말로 천문학적인 숫자다.
물론, 레흐의 머리를 괴롭히고 있는건 "해독에 걸리는 시간이 방대해서 현기증이 난다" 가 아니다.
"모든 해독까지 걸리는 시간을 정확히 잴 수 있기에,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단 사실에 구역질이 난다" 인 것이다.
「짧다. 너무 짧아. 도저히 나 한명의 수명으론 부족해!」

마술엔 노화의 지연이나 일시적인 회춘 마술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고작해야 100년이 평균적인 한계다. 마술사도 수명엔 거스를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손에게 희망을 맡긴다. 마술사들이 대를 거듭하는 건, 오로지 "나는 이루지 못한 숙원"을 잇게 하기 위해서다.
마술세계의 일반론으로서, 한명의 마술사가 자신의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건 50년까지라고 하며, 그 뒤 인생은 후계자…… "다음 런너" 를 육성하기 위해 사용된다.
「싫다. 싫다, 싫다 싫다! 그럴 틈은 없어, 그런 재능은 없어, 그런 주변머리가 있을리도 없어! 애초에 내 자손 따윌 믿을 수 있겠냐! 내 책무는, 내가 아니면 이룰 수 없어……!」
그렇기에 레흐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쓰지 않는다.
자신의 수명으론 절대로 이룰 수 없다는 걸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분신쇄골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제삼자에겐 비장한 각오로 보이겠지.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무의미하다고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희망에 매달리는 어리석을 자라고.
"아아, 적어도 내가 한명 더 있으면, 나도 좀 더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을텐데!"
언제부턴가 그게 레흐의 말버릇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틀렸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이 뒷사람에게 맡기지 않는건 자손을 신용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그게 즐거우니까, 혼자서 독점하고 싶은거잖아?"

「―――――――으음」
한 때, 레흐의 말버릇에 그렇게 반박하던 친구가 있었다.
쉼 없이 달리던 레흐의 시선이 조금 느려진다.
그러고보면 자신에게 학생다운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건 그녀와 점심을 같이 하던 때 뿐이었다, 라고.
『바쁘신 와중 실례합니다 관장. 잠시 괜찮겠습니까?』
「뭐, 뭐야? 바쁘다고, 나는 항상 바쁘다고! 방금도 엄청나게 기합 넣고 있었다고!」
『하아. 그럼, 관장에게 영문 모를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만, 역시 돌아가 달라고 전해드겠습니다』
「물론. 애초에 영문 모를은 뭐냐. 학원장 조차 돌아가게 하는 내가, 약속도 없이, 누군지도 모르는 손님한테 시간을 쓸거라고 생각하는거냐?」
『만약을 위해 다시 확인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평소처럼―――――』
「아아, 잠깐 기다려. 이쪽도 만약을 위해 확인해두지. 약속도 없이 찾아온다는 야만적인 흉내를 낸건 어디의 누구지? 이름은?」
『하아. 미스 아오자키라고 이름대고 계십니다만,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네요. 바로 돌려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잠깐 기다려, 지금 당장 가지! 로비, 아니, 관장실로 안내해줘! 당장 옷 갈아입고 달려갈테니까! 알겠지, 대접은 정중히, 좋은 홍차를 하나 부탁하지! 아아, 하지만 네 파이만큼은 내놓지 마!」
레흐는 소란스럽게 옆방으로 뛰쳐들어가, 요 몇년 입지 않은 신사복(슈트)를 걸치고, 푸석푸석한 머리를 빗으로 정리해, 크게 호흡을 하고 복도로 나왔다.
그 머리는 수년만에 만나는 지인에 대한 긴장과, 흘러넘칠듯한 기대로 가득차 있다.
아까 전의 회상은 하늘의 계시였던 거겠지.
아오자키. 그건 레흐 우발에게 있어서 유일한 친구이며 이해자의 이름이다.
그녀는 봉인지정을 받아 집행부에게 쫓기는 몸이라, 시계탑 내부는 고사하고 영국에 발을 옮기는 것 조차 목숨이 위험하므로 요 몇년간 연락조차 하지 못했다. 특출난 재능은 때론 집안에서도 적을 낳는다.
그런, 이제 두번 다시 만날 수 없을거라 생각했던 그녀가 시계탑에 돌아왔다. 그것도 이렇게 나를 만나러!
오해하지 않도록 주석을 달자면, 레흐에게 연애감정은 없다.
그는 순수하게 자신과 유사한 정신성과 기술을 가진 친구의 방문을 기뻐하며, 그녀와 하룻밤 내내 대화를 나눌 가능성에 가슴을 뛰게 하며, 뺨을 고양시키고 있을 뿐이다. 연애감정 같은 그런 사치스런 것,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경험이 없다.
「실례! 몇년만이지, 정밀도는 떨어지지 않았나 미스 아오자키?
이야 떨어지진 않았겠지, 네게 그런 날이 올리가 없지! 어서 오시게 로크스트로에, 그 지적인 안경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어 기쁘군!」
레흐는 노크도 제끼고 관장실 문을 연다.
매일 청소만 할 뿐 사용되지 않는 관장실엔, 늠름한 자세로 멈춰 선, 20대 던반의 여성이 한명. 그녀는 뒤돌아보며, 트레이드 마크였던 안경을 방해된단 듯이 벗고 레흐에게 웃음지어 보였다.
「하이, 실례하고 있어 관장 씨. 갑작스러운데, 여비가 부족해서 돈 좀 빌려주지 않을래?」
「아닛, 여동생 쪽이잖냐아아아아!!!!」

쿵, 하고 어른스럽지 못하게 의자를 걷어차는 40대.
레흐 우발이 꾼 꿈은, 낮잠 시간을 맞이할 것도 없이 사라졌다.


미스 아오자키는 여행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간소한 셔츠와 낡아빠진 청바지. 아무렇지 않게 등으로 내린 검은 장발.
그녀다움을 이끌어내는 화장(메이크)는 없고, 화려하게 꾸민듯한 느낌도 없다.
그런데도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여성으로서 보이는 건, 몸을 감싼 청량감과 아름다운 프로포션에 의한 것이겠지.
무심코 실내복으로 모험에 나와버린 대관 전의 여왕님.
처음 그녀를 봤을 때, 레흐는 그런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그건 10년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고, 시간의 경과에 좌우되지 않는 소감이었다.
「……실례, 나란 사람이 이성을 잃어버렸군. 하지만, 그 안경은 뭐지. 마음은 알겠지만, 언니의 모방이라니 좋게 보이진 않는데」
「단순한 변장인데? 여기선 괜히 적대시당하고 있잖아, 나」
「그런가. 너는 자신을 안경 하나로 얼버무릴 수 있는 용모라고 생각하고 있는건가. 변함없이 자기 평가가 부족하네. 언니의 고상함, 아담함을 조금은 본받도록 해」
「흉내 내란거야 말란거야 어느쪽인데」
미스 아오자키는 토라진듯 입술을 뾰족하게 한다.
실로 자매답게, 그 행위는 레흐가 기대하던 언니 쪽을 꼭 닮고 있었다.
그녀들 자매는 성격도 생활 방식도 정반대인 인간이지만, 육체면에 있어선 유사한 부분이 많다
세세한 파츠로 나눠서 재조립하면, 완전히 똑같은 인체가 하나 더 생길 정도로.
「그건 그렇고, 왜 이곳으로? 내가 너를 싫어한단 건 알고 있을텐데. 아아, 여비가 부족하단 이유는 믿어. 자네답게 계획성이라곤 전혀 없지만」
「돈 얘기는 덤이지만 말야. 응, 실은 나도 놀랐다고. 아까 접수하는데서 당신이 살아있다고 듣고, 어라, 얘기가 다르잖아 라고」
「음? 내가 살아있단 얘기가 다르다고?」
「그래. 당신, 죽은거 아니었어? 편지로 전했잖아. 근처까지 와있었으니까 이렇게 조문하러 들렀는데, 태연하게 살아있는걸」
아아, 또냐, 라고 레흐는 현기증을 느꼈다.
관장이면서 요 몇년간 전혀 밖으로 나가지 않은 것이, 그런 소문을 낳아버린다. 차라리 진짜로 연구벌레가 된다면 얼마나 편할까, 라고 레흐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주 듣는 얘기지만, 일일히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마. 애초에, 내가 죽었다면 누가 너한테 편지를 전하지?」
「응, 뭐. 그렇지」
미스 아오자키는 책상 위에 놓인 체스의 말을 손에 쥐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납득이 안간단 얼굴이네. 됐어, 그럼 일단 체크해두지. 모르는 사이에 죽어 망령이 되버렸단 일도 없는 건 아니니까. 거기에 거울이 있지? 어때? 내 모습은 비춰지나? 자, 유령 본인은 비춰지지 않아도 비춰지는 것처럼 보이는거지?」
「아, 보여 보여. 랄까 틀림없이 살아있고 건강하다고 당신. 나도 안심했어. 덕분에 터무니 없는 헛수고란 것도 판명났고」
「그건 다행이네. 네겐 혐오감 밖에 느끼지 않지만, 자네의 언니 쪽은 동지로서의 친애의 정도 있고. 언니의 얼굴을 봐서 돌아가는 티켓 요금 정도는 빌려주지. 현금이면 되나?」
「점심밥 정도면 충분하다고. 그것보다―――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거야, 해독?」

미스 아오자키의 질문에, 레흐 우발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응어리를 느꼈다.
애초에 그녀는 레흐의 연구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었다.
레흐는 그녀의 존재방식도 전혀 인정하지 않았었다.
양자는 초대면 때부터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관계였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에 이르러 그런 질문을 해오는건가.

「분명, 과거를 계측하는 연구, 였지?」
「그래. 너와 달리, 지극히 일반적인 고고학이지
남겨진 유물을 찾아, 조사해, 현대의 상식으로 번역하는. 많은 물증을 수집해, 이랬음에 틀림없다는 가설을, 반론할 여지가 없는 수준까지 짜 올리는 거지.
고고학은 과거에서 온 메세지를 정확히 복원해, 되살리는 학문이기에, 별의 관측과 똑같지. 우주의 넓이를 관측할 때, 너희들을 과거에서 온 빛으로 거리를 측정하지 않던가?」
「반대지만 말야. 현재를 알기 위한 수단이, 몇억광년 떨어진 빛을 관측하는 것 밖에 없는 것 뿐. 지금 기술론 "옛날에 있었던 것"을 의지하는 쪽이 확실하니까」
「아아, 그거면 되는거야. 인간은 미래는 고사하고 현재(지금)을 아는 것 조차 불가능하지. 확실한 건 과거뿐이지. 과거의 기록을 수신하는 것으로, 우리들은 "지금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가"를 입증해, 변혁할 수 있지. 미래란 놈은, 시험의 답안지 같은 거야. 누군가에게 채워질 수 있는 건 단순한 공백 뿐이지. 중요한 건 그걸 메우는 인간이고, 공백(미래)엔 아무런 가치도 없어」
레흐 우발의 인생은,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이다.
과거의 경고를 정확히 받아들여, 이 시대에 유포시킨다.
과거에 있었던 세계를, 정리를 다시금 현대에 복각시킨다.
그게 레흐의 연구다. 태어난 순간부터 확신했었다, 그것이 올바른가 틀린가란 의문조차 떠오르지 않는 천명이다.
「내 연구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어. 확실히 과거를 기록해, 남기는 것이 내 인생. 이 뒤―――― 22세기 이후의 미래 따위, 내겐 아무래도 좋을 고찰이다.
그도 그럴게 그런 것, 나완 전혀 상관 없으니」
「아, 그런가. 떠올랐다. 그래서 당신이랑 사이가 나빴던건가.
나, 과거보다 미래파고. 과거의 인류사 같은거, 달마 쓰러트리기 마냥 백년 단위로 날려버려도 목적지는 비슷한 거라고 말했었고」
「그래. 너는 미래 밖에 보지 않는 천연이니까. 새로운 걸 좋아하는 마술사에겐 꽤나 인기가 있겠지만, 내겐 역귀 그 자체. 미래를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쓰라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군」
「지면을 쌓았더니 태양에 도달했다 랑, 태양을 얻기 위해 지면을 쌓았다, 의 차이네. 그래도 뭐, 어느 쪽도 야만적인건 별로 다르지 않잖아?」
「진리를 아는 것이 야만적이라고?」
「몰랐던 것, 보이지 않았던 걸 밝혀낸다고 말하는거니까, 거야 야만적이지」
일리 있다. 연구자가 튼튼(터프)한건 실험에는 참을성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근성이 완강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코 "자신의 사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폭력성은 정복자와 닮아있다.
「……흥. 그럼 나는 연구자 실격이군. 그럴게 나는 다르니까.  섬세하고, 터프하지도 않지. 미래를 생각할 여유도 없고. 자신의 사정은 생각조차 않지. 다만, 이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뿐이고」
그건 자신의 결점을 인정한 말이었다.
그런데도 레흐의 입가는 미소 짓고 있다.
자조가 아니라, 인각적이지 않은 자신의 존재 방식에 안심한 미소였다.
그런 레흐의 얼굴을, 그녀는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라기보다, 그게 편해서 어쩔 수 없단 얼굴이네. 확실히 당신은 나랑 정반대고 연구방침도 좀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얼굴로 말한다면 불평할 수도 없지. 이상한 편지가 와서 걱정되서 와봤는데, 기우였던 모양이네」
미스 아오자키는 손가락으로 가지고 놀던 체스의 말을 책상에 돌려놓고 학장실을 뒤로 하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뭔가, 기분 나쁜데. 그런 얼굴은 어떤 얼굴이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거 같은 얼굴. 진짜로, 말하는 거랑 생각하는게 완전히 다르다니까. 그 상태라면 살아있는 한 현역이겠지. 당신, 연구가 끝날 때까지 죽을 거 같지도 않고」
「그런가. 뭐, 그럴지도 모르지. 살아있는 한 현역이란 말은 좋네. 구제가 있어. 음, 만약 그렇게 되면 언젠가 꽃이라도 바치러 와. 점심의 빚은 그걸로 없는 걸로 할테니」
레흐는 어깨를 움츠리며, 퇴실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서 식당으로 걸어가며,
「하지만 다음에 올 땐 제대로 풀 네임을 말해. 손님이 여동생 쪽이라고 알아도, 적어도 차 정도는 내주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일어날 리 없는 미래를 입에 담았다.



덧글

  • sung 2014/07/27 12:17 # 삭제 답글

    우와 굉장한량... 수고하심니다
  • 더스크 2014/07/27 22:32 #

    사실 몇번에 걸쳐서 해뒀다가 심심해지면 올림ㅋ
  • 비로그인 2014/07/27 12:34 # 삭제 답글

    「점심밥 정도면 충분하다고. 그것보다―――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거야, 해독?」
    점심밥 → 저녁밥(夕飯) 입니다. 그냥 소소하게 눈에 밟혀서...

    그보다 다음 파트가 기대되네요. 모 작품 인물 관련 언급이 있어서 보는 분들이 많이 좋아하실듯...

    그리고 저 레흐가 읽는 책의 권수 문제가... 저도 이거 읽다가 헷갈렸는데. 나스 키노코 씨가 숫자를 신경 안 쓰고 입력한 거겠죠?
    4, 5년에 500권이라고 써있는 게 지금 내 눈이 잘못된 건가 글이 잘못된 건가 한참을 바라봤었는데... 대체 어디서 0을 빼먹거나 더한 건지 궁금할 지경이에요.
  • 더스크 2014/07/27 22:34 #

    저거 책 숫자는 총 숫자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못 쓴듯
    한 부서에 400권 넘는 마술서를 몰아줄리도 없다고 느껴지고요
    아 그리고 점심밥 저거 글 마지막 쯤엔 또 점심이라고 나오길래 시간대 생각해보면
    이거 점심이 맞지 않나 싶어서 수정했습니다;;
  • 사피르 2014/07/27 12:48 # 답글

    아오아오는 작은쪽이지만 큰 쪽이기도 하죠
  • 더스크 2014/07/27 22:34 #

    작지만 큰 그녀
  • 비로그인2 2014/07/27 14:06 # 삭제 답글

    토우코씨는 시계탑에서 여기저기 플래그를 꽂고 다녔던 모양이군요. 잘 읽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 단편, 분량이 어느정도인가요?
  • 비로그인 2014/07/27 14:19 # 삭제

    pdf파일 52페이지 분량입니다.
  • 비로그인2 2014/07/27 14:21 # 삭제

    감사합니다.
  • 더스크 2014/07/27 22:34 #

    그리고 지금 한 14페이지 정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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